평가절하의 역사
금화 1,000개에 들어 있던 금을 다시 녹여 금 함량이 90%인 동전을 만든다고 가정해 봅니다. 동전의 무게가 같다면 약 1,111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동전 수는 늘어도 금의 양은 그대로입니다. 린 앨든은 이런 가상의 계산으로 귀금속 함량을 줄이는 화폐 희석을 설명합니다. 이 글은 그의 2022년 글 What is Money, Anyway?를 재구성했습니다.
동전 수와 금의 양은 다릅니다
금이나 은의 함량을 줄이고 값싼 금속을 섞으면 같은 귀금속으로 더 많은 동전을 발행할 수 있습니다. 발행자는 늘어난 동전을 지출하지만, 그것을 받는 사람이 이전 동전과 같은 가치로 받아 줄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같은 예에서 금 함량을 80%로 낮추면 1,250개의 동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재정이 부족할 때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올리는 대신 화폐를 희석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 계산은 작동 원리를 보여 주는 예시이며 특정 통치자의 실제 발행 기록은 아닙니다.
변화를 알아차린 상인은 같은 물건에 더 많은 동전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겉에 표시된 액면과 실제 귀금속 함량이 어긋나면 가격과 교환 비율도 조정됩니다. 변화가 얼마나 빨리 알려지고 거래에 반영되는지는 상황마다 다릅니다.
앨든은 이를 저축자에게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해석합니다. 기존 금속 자체가 저절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재주조와 교환, 발행 조건이 달라지고 그 결과 같은 액면의 구매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종이가 바꾼 것은 재료만이 아닙니다
앨든은 중국의 초기 지폐와 정부 발행 사례를 통해 종이 통화가 오래된 기술임을 설명합니다. 금속을 직접 주고받는 대신 교환 가능한 증서를 쓰면 운반과 결제가 편해집니다. 그러나 증서를 누가 발행하며 무엇으로 바꿔 주는지가 중요해집니다.
금이 은행과 중앙은행에 집중되고 금에 대한 청구권이 널리 쓰이면 사람들은 금 대신 종이를 보유하게 됩니다. 발행 기관이 금으로 바꿔 주는 조건을 바꾸거나 태환을 중단하면, 같은 종이를 가지고 있어도 청구할 수 있는 내용은 달라집니다. 동전을 회수해 녹이지 않고도 통화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앨든은 이를 기술과 정부 권력이 결합한 변화로 봅니다. 금속에 의존하던 발행 제약이 제도와 정책에 더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는 관점입니다. 다만 법정화폐가 유지되는 이유를 강제력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세금·계약·지급결제에 대한 수요와 경제의 생산 능력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전쟁 재정과 태환 중지
전쟁이나 비상사태에 태환을 중단하고 나중에 다른 비율로 복원한 사례는, 일시적 조치가 보유자의 청구 조건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앨든은 통화 발행이 공식 세금 인상 없이 전쟁 비용을 마련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
금속을 사용하던 정부도 세금과 차입 등으로 전쟁 비용을 마련했습니다. 따라서 금이 바닥나면 전쟁이 반드시 끝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통화 발행의 확대는 재정 제약을 완화하는 한 경로이며, 전쟁의 원인과 규모를 모두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정책 재량을 옹호하는 쪽은 위기에 대응할 유동성과 지출 능력을 강조합니다. 앨든은 그 비용이 저축의 구매력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두 관점을 함께 놓으면 발행량만 보는 데서 나아가 누가 지출을 결정하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